아트뉴스온라인 대표/ 편집인 변재진
Jean-Michel Basquiat, Defacement, 1983
미국 사회에서 흑인 인종차별의 문제는 심각하고, 경찰의 가혹행위로 죽음에 이르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1983년 25세 흑인 작가 마이클 스튜어트 (Michael Stewart)가 지하철역에서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구타를 당하고 며칠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분노한 장 미쉘 바스키아는 훼손 (Defacement)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마이클 스튜어드의 죽음을 추모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잃어버린 이웃, 마이클 스튜어드가 다시 가시화되어 살아났습니다. 작가의 그림 속에는 흑인들의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에 불구하고, 계속해서 학대와 차별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Defacement라는 작품의 상단에는 구타로 인하여 훼손된 스튜어트의 신체 상태를 의미하는 "훼손" (Defacement")라는 단어가 쓰여있습니다.
Keith Hring, Michael Steward-USA for Africa, 1985
키스 헤링도 1985년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한 마이클 스튜어트를 추모하는 작품 "Michael Steward-USA for Africa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이클 스튜어트는 하얀 손이 튜브로 목을 조르는 이미지를 통해서 백인 경찰의 폭력으로 숨이 막혀서 죽어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두 동강이가 나서 피를 흘리고, 많은 사람들은 피바다에 빠져서 살려고 아등바등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지상에는 달러로 표시된 황금만능주의와 자본세력의 횡포가 만연하고, 십자가가 여럿 등장하는데, 제대로 된 것과 거꾸로 된 것이 섞여서 종교가 또 하나의 오염물질처럼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속에 등장하는 노란색 사람들은 모두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초대형 자본과 거대 종교의 횡포 속에 사람들은 모르는척하는 방관자가 되어버린 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키스 헤링의 작품은 여러가지 기호를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뱅크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
1985년 경찰이 흑인 작가를 살해한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데, 불구하고,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당시 46세)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은 편의점에서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플로이드의 목을 짓눌러 제압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하였습니다. 목격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 상에 퍼져서 전 세계인을 경악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접한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작품사진과 더불어 글을 올렸습니다. 뱅크시가 올린 그림에는 조지 플로이드의 영정과 함께, 촛불에 천천히 불이 타들어 가고 있는 미국 국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고 이 문제에 대해 흑인들의 말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입니다." -뱅크시-
"유색인종은 백인들의 시스템에 의해 실패하고 있습니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의 방에 깨진 파이프로 물이 범람하는 것처럼, 이 결함 시스템은 그들(흑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그들 (흑인)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위층 아파트에 들여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백인의 문제입니다. 백인들이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누군가가 위층으로 올라와서 문을 발로 차야 할 것입니다." - 뱅크시 -
잠미 홈즈 (Jammie Holmes)를 포함한 전 세계 많은 예술가들은 플로이드의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모 예술작품을 창작하였습니다. 잠미 홈즈는 플로이드가 남긴 마지막 말인 "그들이 나를 죽일 것입니다" ("They are going to kill me")라고 적혀있는 대형 현수막을 비행기에 매달고, 미국 5대 도시를 횡단하는 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천만명의 전세계 시청자들이 면전에서 한 흑인 남자가 죽어가며 겪은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경험을 하게 하였습니다.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깔린 채 죽어가면서 남긴 말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면서, 작가 홈즈는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더스틴 클라인, 기념비 되찾기 (Reclaiming the Monument)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남부연합의 기념물 중 마지막 남은 것은 남부연합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기념동상이 있습니다. 영상 (Light projection) 아티스트 더스틴 클라인은 작품으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추모의 표현을 하였습니다.
클라인은 동상의 의미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수개월 동안 경찰 폭력의 흑인 희생자들의 모습을 남부군 사령관 리 장군 기념비 전면에 투사했습니다. 동상에 투사된 희생자들의 얼굴이 중심이 되면서 대중들에게 피해를 당한 흑인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클라인은 이 프로젝트를 프레드릭 더글래스 (Frederick Douglass)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과 같은 미국 역사 상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흑인들의 얼굴도 영상에 포함 하도록 확장시켜서 위대한 흑인들이 미국에 기여한 공헌을 인식 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클라인의 프로젝트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회적인 문제에서 최고의 예술이 저절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주는 이벤트였습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에 그려진 플로이트의 추모 스트리트 아트 작품
과거 전통적인 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하면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과거의 미술은 왕이나 종교 권력자를 미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과거 화가들이 아름다운 왕족과 귀족의 삶을 미화하고, 꽃과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을 때, 가난한 민중은 굶주려 죽어가고, 권력의 억압과 탄압에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결국은 가난한 민중과 억압받는 노예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책임은 단순히 왕과 귀족 그리고 거대 종교권력의 부패에만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에 기생을 해서 호의호식하면서 잔인한 왕권과 부패한 종교권력을 미화하였는 일을 하였던 일부 미술가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권력이나 종교에 추종하여 무비판적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불법에 대해 결연히 일어서고, 행동하는 행동주의 미술이나 권력에 저항하는 저항미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독일 베르린 장벽공원에 그려진 플로이드의 죽음을 추모하는 그림
(도미니카 아티스트 애머 프리씽커)
기술자는 주인의 지시와 관습과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노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개척하는 주체적인 인간입니다. 즉 예술은 자유정신의 소산으로 작가의 주관적인 정신세계가 자기 방식대로 표현된 행위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왕이나 종교권력 혹은 컬렉터에게 아부하고, 종속되어 작품을 만들었던 과거의 미술은 기술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진정한 예술가의 자유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는 행동주의 미술, 독재에 대항하는 저항미술,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는 자연미술, 환경미술, 생태미술과 같은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고, 과거의 틀에 갇히지 않고, 관습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미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