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2년 만에 함께 한 제2의 신혼여행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제주도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삶의 시공간이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인연이 하나 둘 모이며 우연이필연이 됐다. ‘대한민국 희망일출 팀’이 마라도를 가기로 했다. 기회는 찬스였다.
1박2일로 마라도만 갔다 오면 너무 아까우니, 이참에 이틀 먼저 가서 32년 전의 제주도를 맛보기로 했다. 제2의 신혼여행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아트매거진 홍익미술』이 마치 때를 맞추기나 한 듯 <예술 섬 제주도 미술관 기행>이란 주제로 발간돼, 어디를 가야할 지를 고민하지 않고 찾아가는 가이드북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물방울 작품을 더 많이 보려고 김창열미술관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시간은 이미 점심 시간이 가까웠지만 가다가 제주흙돼지 식당이 나오면 먹기로 했다. 가다보니<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이정표가 보였다. 고려가 원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다 항복한 뒤, 김통정 장군이 삼별초를 이끌고 이곳에 와서 원과 끝까지 싸웠던 곳이다. 그 때 쌓았던 내성(內城)을 일부 복원하고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워 그때 그분들의 충절을 달래고 있었다.
항몽유적지와 발굴현장
세월의 덧없음을 진하게 느끼며 차에 올라 1분도 채 가지 않아서 보리밭을 만났다.
항몽유적지가 내성이라면 이곳은 흙으로 쌓은 외성(外城) 바로 안쪽이었다. 이삭이
피어 누렇게 익기 시작하는 보리밭. 요즘은 전북 고창이나 제주도 앞 가파도 등 일부지역 외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보리밭. 천안(天安)에서 자란 옆지기는 보리밭을 처음 본다며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 김흥수(金興洙, 1919~2014) 작가의 ‘음양 조형주의’ 작품을 감상했다. ‘하나의 화면에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질적 화면의 공존’을 추구하는 독특한 작품세계였다.
현대미술관에서 김창열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숲길에서 토끼풀 꽃으로 꽃팔찌를 만들어 옆지기에게 주고, 김창열미술관에 들어갔다. 김창열은 잘 몰라도 ‘물방울 화가’라고 하면 ‘아! 그 작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물방울로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다. 그는 50년 동안 물방울을 그렸다. 캔버스에서 신문지로, 모래에서 나무판으로 진화하며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표현했다. 2021년 1월에 귀천한 김창열 작가의 1977년작 물방울 작품이 경매에서 10억4000만원에 낙찰됐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날이 치솟고 있는 그의 작품을 마음 놓고 볼수 있어 행복했다.
회귀, Recurrence, SH87003, 마포에 염료, 유채, Pigment, Oil on linen, 195x330cm, 1987
시간은 짧고 갈 곳은 많은 게 아쉬움이었다. 넓고 넓은 제주도를 이틀 동안 돌아봐야하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본태박물관과 방주교회로 돌렸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경관과 한국의 미를 콘크리트로 표현했다고 해서 유명한 곳이다. 본태(本態)란 본연의 모습이란 뜻으로 인류의 문화적 소산에 담겨진본래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기법과 전통한국 건축이 어울어진 본태미술관
본태미술관에서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방주교회로 향했다.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이 건물은 물 위에 떠 있는 배 모양의 건물이다. 반짝이는 삼각형 메탈로 지붕을 해 물고기의 비늘처럼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방주교회 야경
시계바늘이 어느덧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첫날 산방굴사와 추사 김정희 유배지까지는 둘러봐야 하는데, 발걸음이 급해졌다. 안동 김가 세도정치의 희생물이 된 추사는 산방굴사 앞마을, 대정리에서 9년 동안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귀양살이를 했다.
가시가 빽빽이 달린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만 살도록 하는 고통스런 생활이었다.
추사는 굴하지 않고 이곳에서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19세기 초중반 동아시아 최고의 천재였던 추사의 숨결은 그가 살았던 유배지 집과 추사기념관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추사기념과 - 세한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되었던 집이 복원되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맛있는 제주도
용두암
이튿날 새벽, 사라봉에 가서 해돋이를 보려고 눈을 뜨니 흐렸다. 호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정상에 구름이 잔뜩 걸렸다. 어제의 강행군에 이어 오늘도 갈 곳이
많으니 아침이라도 편하게 지내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하고, 다시 누웠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 벌써 환해졌다. 서둘러 용두암으로 향했다.
용두암 앞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용두암은 볼 때마다 새로웠다. 늘 늦은 밤, 바닷가에서 멍게에 소주 한 잔 마시며 보는 맛에 익숙해 있었는데, 아침 일찍 멀쩡한 머리로 마주하는 맛은 완전히 달랐다. 가슴으로 느끼는 멋과 머리로 생각하는 맛의 차이라고나 할까…. 열 번 쯤은 왔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용연(龍淵)을 찾은 것도 새로웠다. 제주시 중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작은 연못, 백록담에서 솟구쳐 펄펄 끓는 용암이 흐르다 굳은 현무암이 바닷물에 깎여 계곡이 되고 주상절리가 시위하는 절경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용이 와서 놀아 용연이 되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용연을 보지 않고, 제주도에 다녀왔다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일 것이다.
조천에서 남쪽으로 오르막길을 30분쯤 달리면 산굼부리가 나온다. 1989년10월 신혼여행 때 이십여 쌍의 신혼부부들이 가슴으로 풍선 터트리기를 하며 즐겁게 지냈던 곳.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머리에만 남아있는 조각뿐이었다. 32년이란 세월은 돌로 지은 건물도 이겨낼 수 없는 강도라고나 할까. 백록담과 비슷한 시기에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천연기념물 263호인 산굼부리.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번에 새로 만난 것은 구상나무였다.
잎이 성게가시처럼 생겨, 제주도 사람들이 쿠살낭(성게나무)이라고 부르던 것을
구한말 때 영국 출신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1876~1930)이 미국으로 가져가 특허
등록을 하면서 구상나무라 이름 지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이용되며, 유럽에서는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불리는 한국 토종나무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1999년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유성룡 고택인 충효당(忠孝堂) 앞 정원에 기념으로 심었던 구상나무의 늠름함을 산굼부리에 만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었다.